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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보

소크라테스의 변명-인문철학 관련 추천 도서

by 인포맥스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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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변명
소크라테스의 변명/플라톤/문예출판사

 

책 소개

<소크라테스의 변명>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한 것으로 <소크라테스의 변 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 4편을 묶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부터 사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변명’ ,‘크리톤’ ,‘파이돈’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마지막 부분의 ‘향연’에는 소크라테스와 그의 친구들이 ‘에로스(사랑)’에 관해 이야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 ‘변명’은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숭배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신을 믿었다는 이유로 아테네의 법정에 서게 된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인 멜레토스 일행에게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번째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사형이 선고된 후 친구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하면서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 상황에서도 아테네 시민과 신들에게 한 약속을 어기고 구차하게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비록 악법이라 하더라도 국법에 복종함으로써 떳떳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의무임을 강조하고 탈옥을 권유하는 크리톤을 질책한다.

세 번째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죽던 날 아침,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파이돈이 에케크라테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사람이었고 그의 생애는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왜 그를 가리켜 성인이라고 하며 가장 참된 철인이라고 부르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해 주듯 그의 철학적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 소개

플라톤
플라톤

플라톤(기원전 427~347)

플라톤은 기원전 427년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철학자로, 그의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또한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그가 믿고 따르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확인한 후 정치에 회의를 품고 철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통해 맹목적인 삶보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이집트·남이탈리아·시칠리아 등지로 떠났던 플라톤은 기원전 4세기 초 아테나이로 돌아와 서양 대학교의 원조라 할 아카데메이아 학원을 열고 철학의 공동 연구,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그 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배출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주로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해 대화를 주도하는 철학적 대화편을 집필하는데, 그러한 대화편이 무려 25편에 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크리톤』, 『이온』, 『프로타고라스』, 『메논』, 『파이돈』, 『파이드로스』, 『국가』, 『향연』, 『필레보스』, 『소피스트』, 『정치가』, 『티마이오스』, 『법률』 등을 남겼다.

 

목차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생각상자

 

 소크라테스는 ‘죽느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법정에서의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결코 무죄를 호소하고 변명하는 피고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이미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사람들에게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되기보다는 먼저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아테네의 타락과 무지를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그는 치욕스러운 삶을 사는 것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신념대로 말하고 행동하다가 죽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란 육체의 쾌락에서 벗어나 영혼을 통해 진리를 탐구해야 하는 존재이며, 죽음이란 육체와 영혼의 분리이므로 죽어서야 비로소 자신들이 추구하던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진정한 철학자는 죽음을 맞이하여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간수가 가져다준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아주 태연하고 조용했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편안한 모습으로 죽어간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으로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빚을 갚아주겠나?”라는 말을 남겼다.

 

 소크라테스가 왜 중요한 죽음을 앞두고 그런 말을 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 학자들의 해석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감사의 뜻으로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이성과 양심이 병들어 버린 인간의 병이 쾌유되는 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을 갚으라는 의미로 이 말을 남겼다고 해석하고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죽음으로써 육체라는 질병 덩어리로부터 마침내 영혼의 자유를 얻게 된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갚아달라는 말을 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소크라테스는 죽음의 순간까지도 철학자로서의 신념과 도덕적 정의를 잊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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